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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실에 숨어서 걸던 전화

Category
CPO Essay
날짜
2026/08/12
Photo by Igor Omilaev on Unsplash
처음 M&A팀에 왔을 때, 나는 "콜드콜을 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게 무엇인지 제대로 배우기도 전에 나는 막무가내로 전화를 돌렸다. 이래야만 M&A가 될 것 같은 기세로. 지금 생각하면 무엇이 그렇게 급했나 싶은데, 그때의 나는 수화기를 드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을 알지 못했다.
대표번호로 전화를 걸어 "매각자문 때문에 연락드렸다"고 하면, 상대는 나를 구매팀으로 연결했다. 매각과 구매를 구분할 겨를도 없이. 그리고 전화를 받은 직원은 퉁명스럽게 한마디를 던졌다. "안사요."
그 세 글자가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나는 무언가를 팔러 온 사람이 아니었는데, 매번 무언가를 파는 사람이 된 기분으로 전화를 끊었다.
오픈된 사무공간의 회계법인에서, 콜드콜은 그 자체로 부끄러운 일이었다. 옆자리 선배가 듣고 있다는 것, 내 어설픈 말이 사무실 공기에 다 퍼진다는 것. 그게 견디기 어려워서 나는 회의실에 숨어서 전화를 걸기도 했다. 문을 닫고, 목소리를 낮추고, 거절당할 준비를 하고. 지금 돌아보면 그 문을 닫는 손이 조금 부끄럽다. 그런데 그때는 그 문 하나가 나를 지켜주는 것 같았다.
그런데 상처가 나면 굳은살이 배기는 것과 같이, 어느 시점부터 나는 감정을 내려놓기 시작했다. 거절이 아프지 않아서가 아니라, 아픈 채로도 다음 번호를 누를 수 있게 되어서였다. 나는 그걸 일로만 접근하기로 했다.
그러면서 하나의 문장이 마음에 자리 잡았다. 개별 확률이 정해져 있다면, 성공 횟수를 늘리기 위해서는 시행 빈도를 늘려야 한다. 한 통의 전화가 성사될 확률을 내가 바꿀 수 없다면, 나는 전화의 개수를 바꿀 수 있었다. 거절은 실패가 아니라 분모였다. 그렇게 생각하니 "안사요"가 조금은 가벼워졌다. 완전히는 아니었지만.
Photo by Annie Spratt on Unsplash
시간이 흘러 나는 빅펌이라는 타이틀을 벗고, 개업이라는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 이제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내가 나를 알려야 하는 자리다. 영업을 하다 보면 그때 그 콜드콜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개별 연락이 수임으로,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않으면 나는 여전히 낙심한다. 그건 굳은살이 배긴다고 없어지는 게 아니었다. 다만 낙심한 다음이 달라졌다. 다시 마음을 추스르고 그다음 시도를 이어갈 수 있는 것 — 그게 M&A 시절 회의실에서 문을 닫고 걸던 그 전화들이 내게 남긴 것이었다.
M&A부서로 처음 옮겼을 때, 파트장이 점심을 사주며 이런 말을 했다. "M&A는 감정 없어야 해."
그때는 그 말이 냉정하게만 들렸다. 그런데 이제는 조금 다르게 읽힌다. M&A도, 영업도, 어쩌면 연애도 결국 인간관계다. 세상에는 나를 좋아하는 이가 있고 아닌 이가 있다. 그걸 인정한다면,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가늠자는 재능이나 운이 아니라 인연을 만나기까지 임계점까지 지속하는 것이다. 될 사람을 만날 때까지 나를 견디는 일.
그러니 나는 그 말을 이렇게 고쳐 쓰고 싶다. 감정은 오히려 큰 원동력이다. 감정이 없다는 것은 일의 생명이 없다는 것이다. "감정 없어야 해"라는 말은, 감정을 죽이라는 게 아니라 — 도망치고 싶고 뒤돌아서고 싶은 모든 마음을 부여잡고 앞으로 한 발자국을 내디딜 수 있는 용기, 그것이 아니었을까.
회의실 문을 닫던 부끄러움도, "안사요" 세 글자도, 낙심한 저녁도 다 감정이었다. 그 감정이 없었다면 나는 애초에 다음 전화를 걸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요즘 나는 이런 마음으로 산다. 오늘이라는 시간이 두 번 주어지더라도 후회하지 않을 만큼 살아라. 그게 무엇이 되었든 그랬다면 최선을 다한 것이니, 결과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라.
여전히 나는 거절이 두렵고, 여전히 어떤 전화 앞에서는 잠깐 회의실 문을 떠올린다. 그래도 이제는 그 문을 닫지 않고 건다. 그거면 되었다고, 오늘의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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