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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듯함과 부끄러움이 같은 자리에 앉아있던 순간

Category
자전적
M&A
성찰
날짜
2026/06/12
뿌듯함과 부끄러움이 같은 자리에 앉아있던 순간
Photo by Dane Deaner on Unsplash
기억이란 것은 묘해서, 가장 긴장했던 자리를 오래도록 또렷하게 붙들고 있습니다.
M&A팀으로 온 지 두 해째 되던 해였습니다. 선배님께서 먼저 말씀하셨습니다. 매도회사의 본실사에 함께 들어가보겠냐고. 당연히 그러겠다고 했습니다. M&A를 하고 싶어서 팀을 찾아온 만큼, 잘하고 싶은 욕심은 처음부터 있었으니까요.
그 무렵 IB 시장에는 대형화 바람이 불고 있었고, 매도회사는 이런저런 사정 끝에 매물로 나온 참이었습니다. 선배님을 따라 본실사 대응에 참여하게 됐고, 약 두 달을 매도회사 내부에 상주했습니다. 숫자를 들여다보고, 회의에 들어가고, 질문을 준비하는 나날이었습니다.
유동화금융팀 인터뷰 자리에 들어갔을 때였습니다.
저도 걱정이 많았지요. 자료 공개에 소극적인 팀이라는 이야기를 미리 들었습니다. 2년차가 그 자리에서 의견을 낼 수 있을까, 괜히 일을 복잡하게 만드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들이 문을 열고 들어가는 내내 따라붙었습니다. 하지만 책임감도 있고 일을 성공하고 싶은 욕심도 있었기에 어떻게든 자료를 받고 긍정적으로 일을 마무리 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던 시간이었습니다.
ABS와 ABCP의 유동화 방식 차이를 설명했습니다. 틀리지 않은 말이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충분히 공부했으니까요. 그 자리는 결국 순조롭게 정리됐습니다. 나중에 그 순간을 떠올리면, 내가 준비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생각보다는 다행히 잘 풀렸다는 안도가 먼저 올라오곤 합니다. 그게 맞는 귀인인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행히 잘 풀렸다는 안도가 먼저 올라오곤 합니다.
가격조정 협의는 더 날이 서있는 국면이었습니다.
7개 항목 중 수수료수익의 기간 안분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현금주의냐 발생주의냐의 차이였고, 그 처리 방식에 따라 숫자가 달라졌습니다. 부트스트래핑 거래의 위법성 논쟁도 있었습니다. 매수인 측과의 협의는 상당히 팽팽했습니다. 완고하게 가격을 방어했습니다.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계약서에 도장이 찍히던 날, 매수인 임원 한 분의 볼멘소리가 들렸습니다. 직접 겨냥한 말이었는지 흘리는 말이었는지는 지금도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그 순간, 마음 한켠에는 뿌듯함이 있었습니다. 동시에 무언가 부끄럽고 부담스러운 감각이 같은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보통 회계법인이 딜에서 메인으로 다루어지지는 않는 게 대부분이라, 그렇게 주목되는 것도 부담스럽다는 표현이 좀 더 맞지 않을까 합니다. 일을 잘하는 게 오히려 당연한 조직이라 극찬을 하고 환호하는 것은 없었고, 그저 고생 많았어라는 표현이 다였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그 순간, 마음 한켠에는 뿌듯함이 있었습니다.
나중에 그 딜을 어떻게 해냈냐고 누군가 물은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잠깐 머뭇거렸습니다. 의도했다는 표현도 쓸 수 있겠지만, 모든 것이 가능성에 가능성이 더해진 운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지 않을까 합니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지금 다시 그 말을 꺼내어보면, "의도했다는 표현도 쓸 수 있겠지만"이라는 앞부분이 눈에 걸립니다. 잠깐 인정하려다가 멈춘 자리. M&A를 하고 싶어서 팀에 왔고, 당연히 잘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유동화 구조를 스스로 공부했고, 가격조정 논리를 직접 방어했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운이기 전에, 욕심과 책임감이 만들어낸 결과가 아니었을까요.
정말 운이기만 했을까, 라는 질문이 그제야 따라옵니다.
그 질문에 스스로 답을 내린 것은 아직 아닙니다. 다만 계약서 날인 자리에서 뿌듯함과 부끄러움이 나란히 앉아 있던 그 감각만큼은, 여전히 또렷하게 기억됩니다. 어쩌면 그 두 감정이 함께 있었다는 것 자체가, 그날 제가 진짜로 무언가를 해냈다는 가장 정직한 증거였는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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