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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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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은 뜻하지 않은 곳에서 시작된다.

Category
조직문화
날짜
2025/11/27
의류제조업체 실사를 PM으로 맡았을 때의 일이다. 겉으로 보기엔 여느 프로젝트와 다르지 않았다. 킥오프 미팅을 하고, 역할을 나누고, 일정에 맞춰 진행하는 익숙한 수순이었다.
고객은 여러 기관투자자의 자금을 모아 투자하는 PE였다. 기관투자자들이 제시하는 다양한 요구사항은 자연스럽게 실사팀의 업무로 이어진다. 우리는 그 요구를 보고서에 풀어내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어느 날, 주요 기관투자자 미팅을 앞두고 회사가 제공한 경영관리자료를 정리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회사 담당자와 반나절 정도 인터뷰를 진행해 핵심 내용을 뽑아 정리했고, 이후에 “자료가 잘 정리됐다”는 말을 들었다. 고객과의 첫 인연은 그렇게 조용히 시작되었다.
실사는 코로나가 한창일 때 진행됐다. 주요 매출처의 판매량이 크게 흔들리던 시기였고, 우리는 초기부터 이 변동에 집중해 보고서를 구성했다. 다행히 최종 보고 시점에는 우리의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결과로 마무리할 수 있었다.
작은 에피소드는 오히려 최종보고를 무사히 마치고 며칠 지나 생겼다. 다른 거래처 미팅을 끝내고 사무실로 돌아가던 길, 고객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다음 날 예정된 주요 기관투자자 미팅을 위해 보고서 일부를 수정해달라는 요청이었다.
퇴근이 임박한 시간이었다. 자문업무 특성상 이런 급한 요청은 낯설지 않다. 팀원에게 연락해 다시 사무실로 돌아와 달라고 부탁할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직접 가겠다고 말하고 저녁 8시쯤 고객사로 향했다.
우리 일은 대개 작게 시작하지만, 막상 들어가 보면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얽혀 있다. 그날도 ‘간단한 수정’이라고 생각했던 일이 결국 다음 날 새벽이 되어서야 끝났다. 보고 대상은 PE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고객사에 대한 핵심 보고였고, 다행히 미팅도 잘 마무리되었다는 소식을 나중에 전해 들었다.
이후 그 고객사는 한 업체를 소개해 달라고 했고, 그 일이 또 다른 M&A 자문으로 이어졌다. 그 프로젝트는 개업 초기 내게 꽤 든든한 재원이 되었다. 그때 알았다. 인연이라는 끈이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삶을 이끄는 이정표가 될 수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