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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축된 과정, 그리고 남는 것

Category
CPO Essay
날짜
2026/07/06
Photo by Igor Omilaev on Unsplash
요즘은 AI를 많이 생각하게 된다. 위기이면서도 기회이기도 하다고, 나는 그렇게 느끼고 있다.
AI를 사용하면 할수록, 지식노동의 가치 그리고 해자가 많이 낮아지는 것을 느꼈다. 근래 많은 사람들이 회계업무의 상당부분에 AI를 접목하거나 이를 대체하려는 움직임을, 꽤 발빠르게 만들어가고 있는 것 같다. 나 역시 AI를 통해 업무를 진행하면서, 생각보다 많은 일을, 그리고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까지 짚어주는 점이 놀라웠다. 오래 쌓아온 것이 하루아침에 무의미해지는 건 아니겠지만, 그동안 나를 지켜주던 벽이 조금씩 낮아지는 감각은 분명히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를 오래 붙든 것은 그 벽의 높이가 아니었다. 답이 빨리 나온다는 사실 자체가 어딘가 서운했다. 그 과정이 생략된 채 정리된 지식이 제공되는 점이, 무언가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단축된 느낌을 갖게 했다. 물론 이것은 장점이 될 수도, 어떤 측면에서는 단점이 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 양가감정을 아직도 잘 정리하지 못하고 있다.
왜 그 과정이 아까웠을까. 우리가 만들거나 제시하는 결론은 문제제기와 단답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여러 제약사항과 문제점들의 반문을 이겨내고 결론에 이른 것이 대부분이다. 그 과정의 협의와 조정의 과정이 오히려 결론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경우가 있다. 그 과정에는 참가자들의 감정, 다툼 등 여러 요소들이 들어가기에, 참가자 대부분의 암묵적인 동의가 함축된 것이라고 나는 본다. 그런 과정 없이 결과만 주어진다면, 누군가는 합리적 수준이라 받아들일 수는 있지만, 전혀 다른 경험을 가진 이의 입장에서 본다면 받아들이기 어려운 지점이 있다. 결론은 같아 보여도, 그 결론이 몸에 배는 방식은 전혀 다르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오래전 한 장면이 떠오른다. 회생회사를 매각할 때의 일이다. 그런 시기에 회사에 재직하는 이들은, 황망한 감정과 불안한 감정, 그리고 무언가 설명할 수 없고 억누를 수 없는 감정이 소용돌이치는 것 같았다.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만 마음으로는 받아들여지지 않는, 일종의 무력감 같은 것들이 있었다.
Photo by Annie Spratt on Unsplash
나의 책임은 자료요청 및 자료제공이라는 기본적인 매각자문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내 일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뒷받침하는 것은 회사 종업원 분들의 마음을 다독이는 역할이라고 나는 여겼다. 그때 나는 하루를 정해 전체 피자파티를 벌였다. 별것 아닐 수 있는, 음식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온기라고 하기에는 거창하고, 뭐랄까 서로에 대한 작은 연대감 같은 류의 감정을 나눌 수 있게 되는 것 같았다.
매각이 완료되었을 때 회사에서는 회식자리를 마련했는데, 내가 교통상의 문제로 다소 늦게 도착했음에도, 회사분들이 오히려 나의 참석을 기대하고 반겨주었다는 후문을 들었다. 음식을 하나 전달했다고 그랬다기보다는, 힘들어하는 시기에 힘들어하는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었다는 게, 어쩌면 일말의 위로가 되고 힘이 되어서이지 않을까. 나는 그 일을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그 기억이 나에게 가르쳐준 것이 있다. 우리가 일로 만나기는 하지만, 결국 일이라는 것은 결과일 뿐, 그 과정은 인간관계라고 나는 생각한다. 사람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다면, 그 일은 어딘가에서 삐끗한다. 누구도 일을 하면서 감정의 표현을 사용하지 않지만, 이면에는 감정이 바탕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나는 쉽게 경험한다. 누군가에게 좋은 감정이 있으면, 안 되는 일도, 더디게 되는 일도 되거나 빠르게 되는 법이다. 나는 그게 자문이고 매니징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AI 앞에서 내가 도달한 생각은 이렇다. AI는 표현의 방식일 수도 있지만, 본질은 사람의 감정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 미묘한 감정의 변화와 움직임을 포착하고 느끼는 것 또한 인간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되면, 많은 기회가 엿보이는 것 또한 사실이다. 결국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사람만이 AI에 대체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 나는 아직 이 문장을 확신이라고 부르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지금은 여기에 서 있다.
AI를 생각하면서 막연히 두렵기만 했는데, 오히려 사람을 더 깊게 온전히 알아가는 본질적인 움직임이, 앞으로 시간이 갈수록 더욱 중요해진다는 생각이 더 선명해지는 것 같다. 단축된 과정 뒤에 무엇이 남는지를, 나는 이제 조금 알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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